하라 테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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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라 테츠오는 일본의 만화가로, 고시가야 시립 에이신 중학교와 혼고 고등학교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코이케 카즈오의 극화촌塾 출신이다. 1982년 '슈퍼 챌린저'로 프레시 점프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철의 돈키호테'로 데뷔했으나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83년 연재를 시작한 대표작 '북두의 권'은 독특한 설정과 강렬한 그림체로 1980년대 소년 점프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으며, 후대 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꽃의 케이지', '공권력 오룡소사관 나카보 린타로' 등의 작품을 연재했으며, 2000년 슈에이샤를 퇴사하고 코어믹스를 설립하여 '주간 코믹 번치'를 창간했다. 만화가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2012년에도 연재를 이어갔다. 그는 이케가미 료이치의 그림체에 영향을 받았으며, '북두의 권'의 주인공 켄시로는 마츠다 유사쿠, 브루스 리, 멜 깁슨 등을 모델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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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테츠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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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하라 테츠오 |
원어 이름 | 原哲夫 |
로마자 표기 | Hara Tetsuo |
출생일 | 1961년 9월 2일 |
출생지 |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
직업 | 만화가 |
활동 기간 | 1982년–현재 |
대표작 | 북두의 권 창천의 권 꽃의 케이지 ―구름의 저편에― |
수상 | 1982년 프레시 점프상 (《슈퍼 챌린저》) |
공식 웹사이트 | 원철부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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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 |
관련 인물 | 원철남 (お笑い芸人, 코미디언) |
2. 경력
하라 테츠오는 만화가로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초기에는 주간 소년 점프에서 활동하며, 1982년에 '슈퍼 챌린저'로 프레시 점프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철의 돈키호테'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10주 만에 종료되었다.[3][4] 호리에 노부히코 편집자는 그의 그림 실력은 높이 평가했지만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3]
1983년 부론손(武論尊)과 공동으로 제작한 북두의 권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5] 1998년, 슈에이샤(集英社) 편집장이 호리에 노부히코와의 작업을 피하라고 경고했고, 공권력 오룡소사관 나카보 린타로가 2000년에 연재 종료된 후 하라와 호리에는 모두 슈에이샤를 떠났다.[4] 이후, 하라, 호리에 등은 코믹스(コアミックス)를 설립, 2001년에 주간 코믹 번치를 창간했다.[4] 2005년에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숲의 전사 보노론을 프로듀스했다.
2. 1. 초기 경력
하라 테츠오는 코시가야시립 에이신 중학교와 사립 혼고 고등학교 디자인과를 졸업했으며, 고이케 카즈오가 주최한 극화촌塾 출신이다. 어릴 적 우주소년 아톰과 타이거 마스크를 보고 자랐으며, 그림은 타이거 마스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코시가야시에 살았으며, 코시가야시립 오오사와키타 초등학교[11], 코시가야시립 에이신 중학교[11], 사립 혼고 고등학교 디자인과를 졸업했다.[8][9] 트랜잭션 창업자인 이시카와 유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동급생이자 친구이다. 현대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도 고등학교 동급생(단, 무라카미는 일반과에 재학[10])이다.[11][12] 혼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만화극화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마자와 대학 불교학부는 중퇴했다.마츠다 유사쿠를 좋아했으며, 학생 시절에 화풍이 지금과 다르지 않은 마츠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만화가를 목표로 주간 소년 점프에 원고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선배인 아키모토 오사무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고이케 카즈오가 주최하는 극화촌塾에 다니면서 호리에 노부히코의 소개로 다카하시 요시히로의 어시스턴트를 맡았다. 1982년, 슈퍼 챌린저로 주간 소년 점프의 프레시 점프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호리에의 권유로 모토크로스를 소재로 한 만화 철의 돈키호테 (주간 소년 점프)로 연재 데뷔했다. 이 작품은 인기가 없었고, 호리에의 "하라는 더 큰 이야기를 쓸 수 있으니, 돈키호테에 매달리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는 판단 등으로 인해, 겨우 10회 연재만에 중단되었다.
1983년, 대표작인 폭력 액션 만화 북두의 권 (주간 소년 점프) 연재를 시작했다.
2. 2. 전성기: 《북두의 권》과 그 이후
하라 테츠오는 고이케 카즈오가 주최한 극화 서당 출신으로, 어릴 적 천재 바카본이나 타이거 마스크를 보고 자랐으며, 그의 필체는 타이거 마스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마츠다 유사쿠를 좋아했던 그는, 북두의 권의 주인공 켄시로를 만들 때 마츠다 유사쿠의 얼굴, 실베스타 스탤론의 몸매, 이소룡의 동작, 영화 매드 맥스 2의 멜 깁슨의 복장 등을 조합했다고 한다.1983년에 연재를 시작한 그의 대표작 북두의 권은 경이적인 인기를 얻어, 80년대 주간 소년 점프를 지탱하는 동시에, 조조의 기묘한 모험, 돌격! 남자훈련소 등 후대 만화계의 작풍에 큰 영향을 주었다.[5] 1988년 연재가 종료되었지만, 1억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만화 중 하나가 되었다.
그 후, 류우케이 이치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꽃의 게이지가 히트했다. 원작과는 달리 주인공 마에다 케이지를 젊은이로 디자인해 소년 잡지를 고려한 설정을 했다.
1993년에는 캡콤(Capcom)의 비디오 게임 새터데이 나이트 슬램 마스터스의 캐릭터 디자인을 제작했다.[1]
오랜 기간 만화가로 일하면서 원추각막과 관련된 병을 앓아 시력이 나빠졌고, 한쪽 눈을 잃고 남은 눈도 시력이 매우 나빠졌지만, 현재는 근성으로 그리고 있다고 한다.[4] 이러한 사정으로 창천의 권 종료 후 만화가를 은퇴한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전쟁의 아들 오다 사부로 노부나가전 집필을 시작으로, 2012년에도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주간 코믹 번치에 북두의 권의 프리퀄인 북두의 권 외전: 천의 켄을 연재했다. 원래 주간 연재였지만, 원추각막 진단을 받은 후 불규칙적인 연재로 변경되었다.[4]
최근에는 어린이용 그림책을 그리고 있으며, 주간 코믹 번치의 편집이나 판권 사업을 다루는 주식회사 코믹스(コアミックス)의 임원을 하고 있다.
그의 만화 성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반대하는 입장이며, 사콘과 꽃의 게이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사콘의 주인공인 시마 사콘은 이시다 미쓰나리의 심복이다.
2021년, 하라는 혼자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력하여 작품을 만들고 40년간의 경험을 전수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1]
'''작품 목록'''
제목 | 연도 | 잡지 | 출판사 | 비고 |
---|---|---|---|---|
북두의 권 [특별 단편판] | 1983년 | 프레시 점프 4월호 | 슈에이샤 | |
북두의 권 II [특별 단편 제2탄] | 1983년 | 프레시 점프 6월호 | 슈에이샤 | |
북두의 권 | 1983년 - 1988년 | 주간 소년 점프 | 슈에이샤 | 원작: 무론손 |
창천의 권 | 2001년 - 2010년 | 주간 코믹 벙치 | 신초사 | 감수: 무론손, 북두의 권의 과거 이야기 |
북두의 권 -LAST PIECE- | 2013년 | 월간 코믹 제논 | 도쿠마쇼텐 | 원작: 무론손, 북두의 권의 1부와 2부 사이 특별편 |
2. 3. 슈에이샤 퇴사 이후
하라 테츠오는 슈에이샤(集英社)의 편집장이 그에게 "지위가 없다"는 이유로 호리에 노부히코와의 작업을 피하라고 경고했지만, 하라는 만화 제작과 사내 정치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어리둥절했고, 《공권력 오룡소사관 나카보 린타로》가 2000년에 연재 종료된 후 그와 호리에는 모두 슈에이샤를 떠났다.[4]하라, 호리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같은 해에 출판사 코믹스(コアミックス)를 설립했고, 2001년에 만화 잡지 주간 코믹 번치를 출시했다.[4] 하라는 북두의 권의 프리퀄인 북두의 권 외전: 천의 켄을 2001년부터 2010년 잡지 폐간까지 《주간 코믹 번치》에 연재했다. 원래 주간 연재였지만, 하라가 원추각막 진단을 받은 후 불규칙적인 연재로 변경되었다.[4] 이전에 《북두의 권 외전: 천의 켄》 완결 후 은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하라는 기타하라 세이보가 집필하고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월간 코믹 제논에 연재된 《이쿠사노코: 오다 노부나가 전설(いくさの仔:織田信長伝説)》을 제작했다. 《이쿠사노코》의 영어판은 동시에 공식 사일런트 만화 오디션 커뮤니티 웹사이트에서 출판되었다.[6] 2021년, 하라는 혼자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력하여 작품을 만들고 40년간의 경험을 전수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1]
그의 만화 성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반대하는 입장이며 사콘과 꽃 피는 게이지에서 노골적으로 펼치는 경향이 드러나 있다. 특히 사콘의 주인공인 시마 사콘은 이시다 미쓰나리의 심복이다.
최근에는 어린이용 그림책을 그리고 있는 것 외에 《주간 코믹 번치》의 편집이나 판권 사업을 다루는 주식회사 코어 믹스의 임원을 하고 있다.
하라 테츠오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제목 | 연재 기간 | 연재지 | 비고 |
---|---|---|---|
花の慶次 -운의 저편에- | 1990년 - 1993년 | 『주간 소년 점프』 | 원작: 隆慶一郎, 각본: 아소 미오, 전 18권(문고본 전 10권). |
義風堂々 直江兼続 -前田慶次月語り- | 2008년 - 2010년 | 『주간 코믹 번치』 | 원작: 하라 테츠오・호리에 노부히코, 작화: 무라야마 유지, 전 9권. |
義風堂々 直江兼続 -前田慶次酒語り- | 2010년 - 2014년 | 『월간 코믹 제논』 | 원작: 하라 테츠오・호리에 노부히코, 작화: 무라야마 유지, 전 10권. |
義風堂々 直江兼続 -前田慶次月語り- | 2014년 - 2018년 | 『월간 코믹 제논』 | 원작: 하라 테츠오・호리에 노부히코, 작화: 데구치 마사토, 전 14권. |
義風堂々!! 疾風の軍師 -黒田官兵衛- | 2013년 - 2017년 | 『월간 코믹 제논』 | 원작: 하라 테츠오・호리에 노부히코, 각본: 하치즈 히로유키, 작화: 야마다 토시아키, 전 10권. |
前田慶次 かぶき旅 | 2019년 - 연재중 | 『월간 코믹 제논』 | 원작: 하라 테츠오・호리에 노부히코, 작화: 데구치 마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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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테츠오는 아카츠카 후지오, 이시노모리 쇼타로, 지바 데쓰야, 이케가미 료이치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1] 아카츠카의 작품은 그에게 만화의 "힘"과 재미를 알려주었고, 이시노모리의 캐릭터 디자인 방식은 캐릭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지바의 작품은 흥미로운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하라는 이케가미가 자신의 그림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캐릭터들이 지닌 "사실성과 광채"가 극화의 "힘"을 보여준다고 말했다.[1]
3. 작품 세계
4. 영향
하라 테츠오는 스토리 구성에는 약했지만, 그림 실력과 캐릭터 창작에 집중했다.[1] 편집자 호리에 노부히코는 그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라는 호리에가 줄거리를 제안하고 자신은 캐릭터와 미술 감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협업했으며,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했다. 특히 《북두의 권》의 경우, 부론손과의 직접적인 회의 없이 호리에가 중개자 역할을 했다.[1]
하라 테츠오가 극화풍 화풍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이케가미 료이치의 『I・餓男』(아이우에오보이)의 영향이라고 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이케가미 료이치의 팬이 되어 극화에 빠져들었으며,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만화를 그릴 때 이케가미 료이치의 액션 장면을 연구하여 모사했다. 2000년경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하라의 작업실에 있는 『I・餓男』 단행본은 5번째이며, "아직도 일이 막히면 다시 읽는다. I・餓男은 나의 원점이다"라고 말했다.
학창 시절에는 마츠다 유사쿠를 좋아해서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북두의 권》의 주인공 켄시로는 마츠다 유사쿠, 브루스 리, 영화 매드맥스 2의 멜 깁슨 등을 모델로 하고 있다.
4. 1. 만화계에 끼친 영향
하라 테츠오는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가로 아카츠카 후지오, 이시노모리 쇼타로, 지바 데쓰야, 이케가미 료이치를 언급했다.[1] 아카츠카 후지오의 작품에서 보여준 코미디는 그에게 만화의 "힘"과 재미를 보여주었다.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영웅과 괴물을 디자인한 방식은 하라에게 캐릭터 디자인에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지바 데쓰야의 작품은 그에게 캐릭터가 흥미롭다면 스스로 이야기를 움직이고 진행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하라는 이케가미 료이치가 자신의 그림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1]
하라는 자신의 경력 초창기부터 만화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는 서툴렀다고 인정한다. 대신 그는 자신의 그림 실력을 보여주고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1] 그는 자신의 첫 편집자 호리에 노부히코에게 평생 함께 일해주고 "내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감사를 표한다. 그는 호리에가 줄거리를 제안하고 자신은 캐릭터와 미술 감독에 집중하여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특히 《북두의 권》에 대해 하라는 자신과 부론손이 서로 자주 만나지 않았고 직접 업무에 대해 회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신 호리에가 두 사람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1]
4. 2.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
하라 테츠오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로 아카츠카 후지오, 이시노모리 쇼타로, 지바 데쓰야, 이케가미 료이치를 꼽았다.[1] 아카츠카 후지오의 작품에 나타난 코미디는 그에게 만화의 "힘"과 재미를 알려주었다.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영웅과 괴물을 디자인한 방식은 하라에게 아무리 빨리 죽는 캐릭터라도 캐릭터 디자인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지바 데쓰야의 작품은 캐릭터가 흥미로우면 스스로 이야기를 움직이고 진행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하라는 이케가미 료이치가 자신의 그림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는데, 그의 캐릭터들이 지닌 "사실성과 광채"가 게키가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1]
하라 테츠오는 자신의 경력 초창기부터 만화 스토리를 만드는 데는 서툴렀다고 인정한다. 대신 그는 자신의 그림 실력을 보여주고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1] 그는 자신의 첫 편집자 호리에 노부히코에게 평생 함께 일해주고 "내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감사를 표한다. 그는 호리에 노부히코가 줄거리를 제안하고 자신은 캐릭터와 미술 감독에 집중하여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그런 다음 하라는 직원들에게 최종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러한 전체 과정을 "각 사람의 강점을 활용하여 부분의 합보다 더 큰 것을 창조하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북두의 권》에 대해 하라는 자신과 부론손이 서로 자주 만나지 않았고 직접 업무에 대해 회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신 호리에 노부히코가 두 사람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1]
5. 작품 목록
2013년 6월 (2부)